한국의 세계문화유산(UNESCO)/경주역사유적지구

경주역사유적지구(41) 및 계림월성지구 석빙고(2)

Que sais 2021. 1. 1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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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역사유적지구 답사 41 : 계림월성지구 석빙고(2)

논문 형태의 에피소드 과학으로 본 불가사의 http://www.podbbang.com/ch/1778472 넛지, 4차 산업혁명 http://www.podbbang.com/ch/1778471 노벨상을 놓친 비운의 천재들 http://www.podbbang.com/ch/1778470 노벨상이 만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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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설계와 시공>

빙고는 고을의 규모에 따라 크기가 정해지나 대부분 30평이 넘었고 규모가 적은 경우에도 10평이 넘었다. 현존하는 빙고의 빙실은 폭은 대개 46미터, 길이는 폭의 24배 정도이다. 빙고에 저장하는 얼음은 가로 7080센티미터, 세로 1미터, 두께 60센티미터 정도로 두께는 최소한 12센티미터 이상이 되어야만 했다.

빙고의 바닥은, 흙다짐이나 그 위에 넓은 돌을 깔아 놓았고 바닥을 경사지게 만들어 얼음이 녹아서 생긴 물이 자연적으로 배수되게 하였다. 빙고 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빙실 천장을 아치로 만든 것이다.

골격이 되는 아치의 틀을 먼저 만들고 그 사이를 장대석처럼 다듬는 판석을 치밀하게 축조해 천장을 완성시키는 방식인데 골격에 의지하고 그 위에 덧쌓아서 골격과 천장돌 사이에 요철이 생겼다. 그러므로 이 형식은 전체를 아치로 만든 구름다리나 성문들과는 달리 일정 간격으로 세우고 이를 구조재로 하여 그 사이를 석재로 쌓거나 판석을 얹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석빙고의 아치는 같은 크기의 돌을 아치로 쌓아 올려 무지개 형상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정상부에 다른 돌보다 조금 크기가 다른 석재를 꽂아 마감했는데 아치 종석이라 부른다. 석빙고에 사용된 석재는 화강석으로 규격은 대체로 0.5톤 정도이다.

또한 냉기에 의한 전열 면적과 공기 체적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천장에는 요철이 있었다. 아치 구조로 빙실을 만들면 기둥이 없으므로 얼음을 취급하는데 편리하다. 천장에는 빙실 규모에 따라 환기 구멍을 만들었다. 이러한 환기공은 봉토 밖으로 나오게 하여 그 위에 환기공보다 큰 개석을 얹어 빗물이나 직사광선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였다. 환기공은 대체로 30×30센티미터로 23개가 일반적이다. 출입문은 특정한 규칙이 없이 보통 바깥 지반보다 낮은 위치에 설치하였다. 출입문의 크기도 얼음의 출납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크기로 출입구를 통한 열 손실이 최소화되도록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빙고 건축 때 철물과 회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철물은 석재와 석재 사이가 서로 분리되지 않도록 삽입하였고 회를 많이 사용한 것은 봉토 조성 때 진흙과 함께 혼합하여 외부에서 물이라든가 습기가 침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용도였다.

봉토에는 잔디를 심어 열의 손실을 막고 봉분이 수해에 의해 손상되지 않도록 하였다. 빙고 외곽으로는 담장을 설치하여 외기를 막았고 일반적으로 빙고 설치에 관련된 석비가 남아 있어 빙고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얼음의 채취와 보관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캐낸 얼음은 가로 7080, 세로 1m 이상이 되도록 일정한 규격으로 맞추어 톱으로 썬 후에, 우마차를 이용해 석빙고로 옮겼다. 어떤 때는 겨울이 춥지 않아 채취가 불가능하였고 때로는 보관상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결국 많은 얼음을 겨울에 채취하여 봄부터 사용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겨울에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채빙은 매우 고된 일로 겨울철만 되면 한강변의 민가들이 채빙노역을 피해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다. 채빙부역을 피해 도망간 남편을 기다리는 어린 부인을 뜻하는 빙고청상(氷庫靑孀)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그러므로 1423년 세종은 얼음을 캐고 저장하는 사람들(장빙고 역군)에게 술 830, 어물 1,650마리를 하사하여 이들을 배려하기도 했다. 또 빙부(氷夫)가 동상에 걸리거나 물에 빠졌을 경우 의원을 보내 치료케 하고 음식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얼음의 용도가 반드시 음식 저장 등의 실용적인 측면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얼음을 보관했다가 여름에 사용함으로 여름철에 극성하는 양기를 억제하여 자연의 조화를 회복시켜 보겠다는 동양철학적인 발상도 큰 몫을 했다. 그러므로 겨울이 춥지 않아 얼음이 얼지 않으면 동빙고의 북쪽에 있었던 사한단(司寒壇)에서 얼음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기한제(祈寒祭)를 지냈다.

세종 5(1423) 11월 장빙군에게 술 830, 생선 1,650마리를 하사했고 세조 13(1467) 11월에는 환관과 선전관을 동서빙고에 보내 동상이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게 한 것을 보면 국가에서 빙고 제도에 각별한 신경을 썼음을 알 수 있다.

성종 17(1488) 12, 날씨가 따뜻해 얼음이 얼지 않자 홍문관에 명해 기한제를 지내게 했고 영조 45(1769) 12월에는 기한제를 지낸 후 날씨가 추워져 얼음을 채취할 수 있었다고 제관이 상을 받기도 하였다.

성종 24(1493)에는 군관들이 술을 마시고 얼음 저장하는 일을 아랫사람들에게 맡기는 바람에 얼음이 녹아 물이 창고 밖으로 새어나왔다. 이에 성종이 크게 노해 관원 전원을 파직시켰다. 이듬해에는 관원들이 정성 들여 얼음을 관리했기 때문에 연산군 1(1495) 성종의 대상(大喪)과 명나라 사신의 접대에 쓰고도 가을까지 남아돌았다고 한다.

선조 18(1585) 8월에는 사헌부 정언 류덕수가 서빙고의 얼음이 도둑까지 맞아 여름도 지나지 않았는데 거의 다 써 버렸다.”고 하며 이조에게 특별히 조사하도록 아뢴 바도 있다. 얼음의 저장과 반출은 엄격히 규제됐다. 만약 얼음의 보관을 소홀히 하여 저장한 얼음이 녹아 없어지면 파면시키는 등 빙고의 얼음은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철저한 관리>

석빙고의 얼음 저장 과정은 두 단계로 나뉜다. 첫 번째는 얼음 저장에 앞서 추운 겨울철 내내 석빙고 내부를 냉각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얼음을 넣은 후 78개월 동안 내부를 차갑게 유지하는 것이다. 우선 석빙고 내부를 냉각시키는 방법은 바로 출입문 옆에 돌을 쌓아 만든 날개벽에 있다. 겨울철에 부는 찬 바람은 이 날개벽에 부딫쳐 소용돌이로 변해 석빙고 내부 깊은 곳까지 들어가 내부의 온도를 낮추어 준다. 이때 날개벽은 조금 더 많은 양의 찬바람이 석빙고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실제로 경주에 있는 일반 지하실의 겨울철 기온은 약 10도 정도인데 비해 석빙고의 내부 기온은 영하 0.52도 정도다.

얼음을 넣은 후 78개월 동안 내부를 차갑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3가지이다.

첫째는 대류의 순환을 목적으로 석빙고 내부에 절묘한 천장 구조를 만들었다. 천장은 화강암으로 아치형(활과 같은 곡선으로 된 형태)으로 만들었고 각각의 아치형 천장 사시사이는 5군데의 움푹 들어간 빈 공간이 있다. 이것이 석빙고 비밀의 핵심인데 이곳은 내부에 모인 더운 공기를 가두어 밖으로 빼내는 공기 주머니 역할을 한다. 이곳에 모인 더운 공기는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위쪽에 설치된 3곳의 환기통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환기통을 통해 더운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도 상당한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다. 환기통 구조는 아래쪽은 넓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각형 기둥모양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석빙고 내부의 공기가 밖으로 잘 빠져나가기 어렵다. 하지만 바깥에서 바람이 어느 정도 빠르게 불어 환기통 사이의 좁은 틈새로 지나가면 그곳의 기압이 낮아져 환기통 내부의 더운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간다. 환기통이 내부의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고 석빙고 내부의 공기가 적절하게 빠져나가도록 한 것이다.

둘째는 얼음이 녹으면서 생길 수 있는 물기를 석빙고 밖으로 빠르게 빼낼 수 있도록 바닥에 경사식 배수로를 설치했다. 또한 빗물의 침투를 막기 위해 석빙고 외부에 석회와 진흙을 발라 방수층을 만들었다. 벽과 천장의 틈 그리고 얼음의 사이에는 열의 이동을 잘 차단하는 짚, 왕겨, 톱밥과 같은 단열재를 채춰 넣어 외부와의 전도에 의한 열 전달을 막아 얼음을 보호했다.

세 번째는 석빙고 외부에 흙을 덮은 후 잔디를 심고 입구에는 큰 나무를 자라게 하여 뜨거운 여름철 태양으로부터의 복사에 의한 열 전달을 막았다. 또한 잔디는 비가 내릴때 흙이 손실되는 것을 막아 석빙고를 보호했다.

열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 쪽으로 이동하는데 열이 이동하는 방법은 전도, 대류, 복사가 있다. 전도는 물체를 따라 열이 이동하는 현상으로 가열되고 있는 주전자에 손을 대면 뜨거운데 이것은 열이 주전자를 통해 손으로 전도되기 때문이다. 대류는 액체나 기체가 이동하면서 열이 함께 이동하게 되는 현상이다. 공기나 물에 열을 가하면 가열된 부분은 가벼워져서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던 공기나 물은 상대적으로 무거워서 아래로 내려와 섞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기나 물 전체에 열이 전달되는 것이 대류다. 화로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았을 때 물이 끓어 수증기가 올라가는데 이는 대류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사는 열 자체가 직접 이동하는 현상으로 난로 옆에 서 있으면 따뜻해지는데 이는 복사현상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열의 이동 속에서 살고 있다. 첫째 주전자 손잡이는 나무나 플라스틱 같은 단열재로 만들어 뜨거운 주전자에서 손으로 이동하는 열을 막아 화상을 입지 않도록 한다. 감자나 고구마를 삶거나 구을 때 쇠 젓가락을 꽃아 두면 쇠 젓가락을 통해 열이 속가지 전달되어 더 빨리 익는다.

둘째 방 한쪽에 난로를 켜 놓으면 얼마 후 따뜻해진 공기의 이동에 의해 방전체가 따뜻해진다.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이 나오는 방향은 위쪽, 히터의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방향을 아래쪽으로 하는 이유도 이것이 잘 일어나서 방 전체가 시원하거나 따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셋째 무더운 여름 외출할 때 양산을 쓰거나 나무 늘 아래에서 쉬는 것은 태양으로부터 열이 직접 이동하여 덥게 만드는 복사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보온병은 열의 세 가지 이동 즉 복사, 대류, 전도를 막는 기능이 뛰어나다. 보온병은 안벽과 바깥벽 사이가 진공으로 되어 있는 이중벽 구조로 전도나 대류에 의한 열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안쪽 벽에 은으로 도금하여 복사열을 내부로 반사시키므로 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차단한다. 따라서 보온병의 입구를 통한 열의 이동만 잘 막으면 차갑거나 뜨거운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