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의 무덤은 건원릉 서쪽 능선에 있는 현재 구리시에 위치한 영조 무덤인 원릉으로 정해진 후 10월 말 계획대로 안장되었다. 그런데 막상 효종의 시신을 관에 넣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효종의 어깨가 너무 넓어 시신을 넣기 위해 준비한 관이 맞지 않은 것이다. 조선 시대의 왕의 장례 절차는 왕이 즉위하자마자 관을 짜고, 왕이 사망하기 전까지 매년 옻칠을 덧칠해서 보관한다. 효종의 재위 기간인 10년 동안 어깨가 더 굵고 넓어졌다는 뜻이다. 효종이 북벌에 신경을 쓰기 위해 체력을 단련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실록에 의하면 송시열이 ‘효자는 염을 단단히 묶지 않는데 이는 부모가 살아나기를 바라는 효심을 보이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염을 단단히 묶지 않아 시신이 부패하면서 부풀어 올라 관이 맞지 않았다는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