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사(한국사) 24

사상 최강 고구려의 비밀, 개마무사

youtu.be/WNvn8IWwjsA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이 있어야 하지만 일반적으로 탁월한 지도자와 우수한 장병들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아무리 많은 부하와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효율적인 작전을 구사하지 못하면 패배한다. 반대로 병력의 수에서는 비록 열세이지만 장병들의 사기가 드높고 지도자가 유효적절한 작전을 구사한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직접 전투에 임하는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장병들에게 아무리 어려운 전투라도 패배하지 않는다는 신념과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자신이 벌인 전투는 반드시 이기며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장병들의 사기는 올라간다. 이러한 믿음을 ..

황금보검과 아틸라

황금보검 안녕하십니까. 끄새입니다. 한국에는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제주도 자연유산을 제외하고 모두 13건이 있는데 이중 경주역사지구는 매우 특별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1995년 석굴암 ·불국사가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록되더니 2000년에는 아예 경주 거의 전부 경주역사유적지구로 등재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초창기 특정 시설물들을 대상으로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했으나 경주와 같은 경우 도시 곳곳에 유네스코급 세계유산이 있으므로 아예 도시의 유산 전체를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프랑스 파리,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영국 런던 등을 비롯한 세계적인 도시들이 역사지구란 이름으로 등록되었는데 경주가 이에 포함된 것은 그만큼 경주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무엇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네스코세계..

황금보검이 알려주는 신라와 훈족

끄새-TV의 끄새에게 신라의 고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출토품 두 가지를 꼽으라면 금관과 황금보검(장식보검)을 든다. 그 중에서도 한 가지를 꼽으라면 국보도 아닌 황금보검(보물 635호)을 이야기하곤 했다.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금관보다 황금보검을 선정한 이유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곧바로 어떤 이유로 황금보검을 제일 처음으로 꼽느냐고 다시금 질문한다. 이에 대한 답을 신라에 조예가 깊은 요시미츠 츠네오의 글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 ‘보로워에(현 카자흐스탄)의 귀금속 상감검의 장식은 얼핏 보면 신라의 황금보검 장식과 전혀 무관해 보일 정도로 디자인이 다르다. 그러나 제작 기법은 모두 공통적으로 복스 세팅법에 의한 귀금속 상감법이고 상감한 귀금속 주위에 금알갱이를 장식하는 누금세공 기법도 동일하다...

세계 3대 정복자, 훈족의 아틸라 III(Attila The Hun)

아틸라가 훈족임에도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더십이란 집단의 목적을 위해 다른 이들의 행동을 지시하는 책임을 가지기 위한 하나의 특권이라고 설명된다. 즉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지고 각각의 구성원들에게 권위의 레벨을 정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한 다른 기술들을 개발하는 데 효과적인 기초가 된다. 아틸라가 야만적인 유목민들을 이끌고 훈족의 수장이 되었을 때 그가 리더로서 직면했던 일보다 더 큰 리더십에의 도전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그의 부하 중에서 아틸라의 세계 정복과 훈족의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를 공유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결정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들을 납득시키고..

세계 3대 정복자, 훈족의 아틸라 II(Attila The Hun)

학자들은 고대 한민족의 원류가 어떤 과정을 통해 아시아 대륙의 훈족과 한반도 남부의 가야 및 신라인으로 갈라서게 됐을까 추적했다. 이는 진시황제 때부터 중국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흉노의 흥망성쇠와 연계된다. 흉노는 진나라,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한나라와 중원의 패권을 놓고 장기간에 걸쳐 혈투를 벌였다. 진시황제는 천하를 통일한지 10여년 만인 기원전 210년에 사망한다. 후임자인 호해가 등극하였지만 곧바로 항우에게 패하고 진나라는 멸망한다.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놓고 싸운 결과 결국 유방이 승리하고 통일중국인 한나라를 세운다.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북쪽에 있는 흉노는 중국을 견제하고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었다. 사실상 한나라 역사는 북쪽에 있는 흉노와의 관계라고 할 정도로 때로는 가깝게..

세계3대 정복자, 훈족의 아틸라I(Attila The Hun)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구려에 대해 강한 매력을 갖는 것은 현재 중국의 영토로 되어 있는 광대한 지역을 한민족으로 구성된 강한 군대로 마음껏 뛰어다녔다는 데 있는 것 같다. 특히 중국의 수도 북경지역까지 고구려가 진출하였다는 사실은 한민족으로 깊은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광개토대왕(375~413) 재위 당시 고구려의 영토는 서쪽으로는 요하, 북쪽으로는 개원, 동쪽으로는 옥저와 예, 그리고 남쪽으로는 한강 유역에 이르렀다.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413~491) 시대에 고구려가 고조선이 차지했던 영토를 거의 전부 되찾은 것으로 추정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삼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를 멸망시켰다는 대목이다. 그보다 더욱 안타까..

한국(동이)과 중국(화이), 민족이 다른 이유(18) : 갑골문자

youtu.be/ftzd5ofIKm0 한민족(동이)과 중국인(화이)의 차별성(18) : 언어체계 마지막은 그림 빌리기이다. 그림 빌리기는 그림으로 묘사할 수 없는 다소 추상적인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즉 그림 그리기 대상처럼 묘사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그림 합치기처럼 연속적이고 논리적인 합성이 가능하지도 않은 경우, 그려져 있는 그림을 빌려 의미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숫자 만(萬)의 갑골문은 상당히 의외인데 이는 숫자와 전갈의 관계를 연결지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의미상으로 전혀 관계가 없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갈류의 그림을 빌어 숫자 일만을 대신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만들어진 ‘만’자라는 글자가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는데 중요성이 있다. 은허에서 발견된 상(은)의 갑골문이 ..

한국(동이)과 중국(화이), 민족이 다른 이유(17) : 복골 및 갑골문자

youtu.be/jhUeTwo5R_k 22. 복골(卜骨 , 갑골) 동이족이 중국 문명사에 끼친 영향은 그야말로 다대한데 그 중에서도 한자를 발명했다는 점이다. 동이족이 한자를 발명했다고 하니까 한국인이 한자를 발명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적어도 한자의 발명자가 화하족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문제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동물의 견갑골(肩胛骨, 어깨뼈)에 구멍을 뚫고 불에 구워 점을 치는 골복(骨卜, 갑골점)은 동이족의 전유물이다. 복골은 기원전 5,200년 전의 부하문화에서 처음 발견된 후 하가점 상층문화에서 중원으로 내려간 상(은)에서 골복이 유행한다. 그러나 은나라가 주나라에 패배하면서 골복의 전통은 사라지지만 동이족의 전통이 강한 부여나 한반도 동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발견된다. 동이..

한국(동이)과 중국(화이), 민족이 다른 이유(16) : 맥궁및 파르티안기사법

youtu.be/STX2-HLm35o 각궁에도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물소 뿔을 접착한 어교는 비가 오거나 기후가 습해지면 물을 먹어 녹아 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비가 오거나 습할 때는 각궁을 사용할 수 없으며 무더운 여름철에는 활을 따뜻한 온돌방에 넣어서 보관해야 했다. 더구나 각궁은 제작하기가 매우 어렵다. 각궁 하나를 완성하는 데 최소한 5년 이상이나 걸린다. 그럼에도 고구려 등 승마에 남다른 재주가 있는 기마병들이 이 같은 활을 사용한 것은 크기가 작아 다루기가 편리하고 위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흉노(훈) 등 경기병이 사용하는 활은 매우 작다. 기병용은 보통 80센티미터(다 폈을 때의 길이이므로 실제로 사용할 때의 길이는 60센티미터)인데 위력은 사수의 힘에 따라 큰 차이가 나지만 ..

한국(동이)과 중국(화이), 민족이 다른 이유(15) : 각배와 각궁

youtu.be/z7ixRJsG7Sg 18. 철제갑주(鐵製甲冑)와 승마용마갑(乘馬用馬甲) 기마민족이 마구를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주의 천마총에서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의 안장틀이 4점, 안장깔개 1점, 등자 5개,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 3 점 등이 발견되었다. 안장틀에는 거북등무늬(龜甲文)로 구획된 투각 금동제 장식을 안장틀(磯) 상부에 붙이고 그 아래(海)에 띠고리(버클)을 좌우로 한 개씩 붙여놓았다. 안장틀 안쪽에는 줄무늬를 넣어서 짠 비단이 발라져 있어 왕의 안장답게 호화롭다. 안장틀 앞가리개 표면에 붙여진 금동 투각 금구 모든 면에 금제 달개를 달았다. 이들 안장들은 당시의 중국제 안장과 비교해보면 기본적으로 다르다. 신라 것에는 북방기마민족 문화에 상용되는 안장틀에 부착된 끈에 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