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전체를 볼 때 놀라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태종이 세자인 양녕대군을 폐세자로 만들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봉했다는 점이다. 충녕대군이 한국 역사상 가장 걸출한 왕이 되어 광개토대왕과 함께 대왕으로 불리는 두 명 중 한 명이므로 태종의 안목이 매우 높았다는 설명도 있지만 양녕대군의 폐세자는 그렇게 간단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양녕대군은 태조 3년(1394), 조선이 창건된 직후 당시 정안군이던 이방원의 맏아들과 다름없이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이방원의 처지는 최악이었다. 당시 이방원은 세자 자리를 이복동생에게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개국공신에도 제외되어 낙담하고 있었다. 더구나 양녕대군보다 앞에 태어났던 세 명이 모두 강보에서 죽어 양녕대군은 태종과 원경왕후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