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차사 2

조선 왕릉(60) : 제3구역 헌인릉(2)

원경왕후에 대해 잘 알려져 있는 것은 함흥차사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태조가 함흥에서 돌아올 때 태종이 직접 교외로 나가서 태조를 맞이하려 하자, 하륜 등이 말리면서, 태조의 진노가 아직 다 풀어지지 않았으니 모든 일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큰 장막을 받치는 굵고 높은 기둥을 많이 세우게 하라고 조언하였다. 태종이 이를 허락했는데 태조가 태종을 보고 별안간 활을 쏘자, 태종은 급히 순간적으로 기둥 뒤로 몸을 피해 화살은 기둥에 꽂혔다. 그러자 원경왕후 민씨가 화려한 대례복을 입고 나타나 태조에게 큰 절을 올린 후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너무도 오래 고생하셨습니다. 사냥을 즐기시는 줄 잠깐 잊어 준비가 없사오나 남은 화살이 있으니 다시 한 번 쏘아보십시오.’ 난데없이 태상왕이 활을 쏘는 바..

조선 왕릉(6) : 제1구역 동구릉(3)

이성계가 이방원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는 조선왕조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위야 어떻든 조선 개창은 이성계였지 이방원이 아니었으므로 이성계가 이방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로부터 도전을 받을 수 있는 빌미였다. 더구나 이성계는 태종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태종은 이성계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방법론은 단 하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함흥에 은거해 있는 태조를 자신이 있는 수도로 모셔오는 길이다. 그러나 태상왕인 이성계를 강제로 납치해 올수는 없으므로 태조를 움직일 수 있는 인물들을 함흥으로 보내 설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유명한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생긴다. 태종은 함흥차사로 태조의 옛 친구인 성석린(成石璘)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