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3

조선 왕릉(63) : 제3구역 헌인릉(5)

태종이 궁극적으로 양녕을 폐세자하는 빌미로 삼은 것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태종 10년(1410)에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만난 봉직련이라는 기생과 염문을 일으키더니 그의 행동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막나가기 시작했다. 몰래 궁궐 담벼락을 넘어 여자를 찾아가기도 했고 여자를 궁궐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더욱이 태종을 놀라게 한 것은 초궁장이라는 기생과도 관계했는데 그녀는 태종의 형이자 상왕인 정종의 여자였다. 이 사건은 양녕이 초궁장이 상왕의 여자라는 것을 몰랐다고 발뺌하여 초궁장이 쫓겨나는 것으로 무마되었다. 또한 세자의 매형인 이백강과 관계있는 칠점생과도 놀아났다. 태종은 세자의 측근들을 벌주거나 상대 여자들을 처벌하는 식으로 대응했는데 세자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이들을 비호하는데 주..

조선 왕릉(61) : 제3구역 헌인릉(3)

조선왕조 전체를 볼 때 놀라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태종이 세자인 양녕대군을 폐세자로 만들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봉했다는 점이다. 충녕대군이 한국 역사상 가장 걸출한 왕이 되어 광개토대왕과 함께 대왕으로 불리는 두 명 중 한 명이므로 태종의 안목이 매우 높았다는 설명도 있지만 양녕대군의 폐세자는 그렇게 간단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양녕대군은 태조 3년(1394), 조선이 창건된 직후 당시 정안군이던 이방원의 맏아들과 다름없이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이방원의 처지는 최악이었다. 당시 이방원은 세자 자리를 이복동생에게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개국공신에도 제외되어 낙담하고 있었다. 더구나 양녕대군보다 앞에 태어났던 세 명이 모두 강보에서 죽어 양녕대군은 태종과 원경왕후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조선 왕릉(59) : 제3구역 헌인릉(1)

강남구 내곡동 대모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헌인릉(獻仁陵, 사적 제194호)은 조선 제3대 왕인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과 제23대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인릉을 합쳐 이름 붙인 곳이다. 과거부터 서울시의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우거진 숲 속이 일품이며 헌릉에는 아름다운 오리나무 숲에 둘러싸인 습지가 있는데 이것은 사전에 계획된 일이다. 오리나무는 장수목으로 옛날에 도로의 오리(五里)마다 심어놓고 거리 표시를 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오리나무를 능역의 입구 습한 지역에 인위적으로 심어 관리했는데, 낙엽활엽수의 교목(큰나무)으로 습하고 비옥한 정체수(停滯水)가 있는 토양에서 잘 자란다. 목질부가 견고하고 붉은색을 띤 이 나무는 양수로 능역 남측의 합수지(명당수) 연못(주작) 근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