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반정 4

조선 왕릉(72) : 제3구역 선정릉(3)

② 정릉(靖陵) 제11대 중종(1488〜1544)의 능인 정릉은 선릉에서는 다소 다리품을 팔아야할 정도로 떨어진 곳에 있으므로 선릉과는 달리 사람들의 방문이 많지 않아 고요한 곳에 위치한다. 그러나 능역의 경계를 벗어나면 강남 중심부답게 주위가 매우 번화하여 묘한 대비를 이룬다. 중종은 조선왕조의 치부를 가장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왕으로 사극에서 자주 나오는 주인공 중의 한 명 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유명한 중종이 정릉에 묻혀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종은 그야말로 격변기의 왕이다. 성종 19년(1488)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태어나 진성대군에 봉해졌는데 1506년 박원종 등이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13세인 그를 왕으로 추대했다. 중종이 졸지에 왕으로 등극하게 된 중종반정을 보자. ..

조선 왕릉(49) : 제2구역 온릉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산 19번지에 있는 온릉(溫陵, 사적 210호)은 제11대 중종의 아홉 부인 가운데 첫 번째 부인 즉 원비인 단경왕후(端敬王后)(1487〜1557) 신씨의 능이다. 미공개 왕릉인데다 다소 외딴 지역에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39번 국도와 인접하며 교외선 온릉역과 장흥역 사이에 있어 찾아가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문화재청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서오릉에 위치)에서 사전 허가를 받고 방문해야 한다. 단경왕후는 단종비 정순왕후와 함께 조선의 왕비 중 가장 슬픈 여인으로 꼽히는데 성희안, 박원종 등이 일으킨 중종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곧바로 왕비로 책봉되었다. 반정 주모자 박원종은 연산의 신임이 두터워 도부승지, 좌부승지, 경기관찰사 등을 거치며 국가의..

조선 왕릉(32) : 제2구역 서오릉(11)

과학은 폐비 윤씨가 일반인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에 도전했다. 윤씨의 행동이 엄격하기 짝이 없는 조선 왕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점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에서는 폐비 윤씨가 출산 후 급격하게 성격이 변한 원인을 산후 우울증으로 추정했다. 경계선 성격장애로 설명하기도 한다. 감정 기복이 심하면서도 충동적인 성격에 식사 도중 화를 참지 못해 상을 엎었다는 등 분노 조절에 문제를 보이는 것은 물론 후궁들에게 협박하고 성종의 처소에 무단침입을 하거나, 궁녀들에게 ‘전하를 모시면 죽을 줄 알아라’라는 협박을 하는 등 성종에게 심한 집착을 보이는데, 이런 것은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들이 보이는 대표적인 모습들이라는 설명이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청소년기와 성년기 초기 때 잘 나타나며, 폐비 윤씨가 ..

조선 왕릉(29) : 제2구역 서오릉(8)

윤씨가 폐비되자 그야말로 진행된 내용은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왕실의 윗전이었던 정희왕후는 원자가 사가에서 폐비와 만나지 못하도록 폐비가 폐출되는 날, 당시 둘째 대군을 낳은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들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어미와 유모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손도 쓰지 못하게 했는데 결국 5일 뒤 사망한다. 그런데도 성종은 그로부터 불과 석 달 뒤에 숙의 권씨를 새로운 후궁으로 간택하여 입궁시킨다. 이후 윤씨가 사사되는데 대부분의 사극 등을 보면 시어머니 인수대비가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당대의 정황을 여러 각도로 분석한 학자들은 성종이 보다 적극적으로 일을 진행했다고 생각한다. 성종은 중전의 폐위문제에 대해 대간과 성균관 유생 65명이 죄도 명확하지 않은 중전을 폐비시킨다는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