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 2

조선 왕릉(64) : 제3구역 헌인릉(6)

양녕의 실수는 조선 건국이 남다른데다 세계정세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녕은 조선이 무력으로 탄생했으므로 무력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왕이 되려는 자신이 무를 닦는 것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전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태종은 이미 조선을 건국했으므로 조선을 장기적으로 존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성계와 자신이 무력으로 조선을 창건했지만 무력을 앞세운다면 자신들에게 대들을 세력은 결국 무인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무를 바탕으로 형제들을 살해하고 엄밀하게 말하면 태조 이성계와 형인 정종을 겁박하여 왕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양녕이 바로 할아버지와 자신을 똑 닮아 무를 우선했다. 그런데 태종이 방심할 수 없는 것은 양녕이 처가 즉 무인인 외삼촌들과 ..

조선 왕릉(21) : 북한 왕릉

조선왕릉은 모두 42기이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은 총 40기다. 이는 북한에 있는 제릉과 후릉은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조선왕릉의 완결을 위해 제릉과 후릉도 다룬다. 그러나 끄새는 아래 설명하는 제릉과 후릉을 직접 답사하지 못하였다. 아쉽지만 평양에서 발간된 『조선유적유물도감』과 『문화유산 왕릉』,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실 계보』 등을 비롯한 여러 자료들을 참조하였음을 적는다. 〇 제릉 태조에게는 2명의 정부인이 있는데 첫번째 부인은 신의왕후, 둘째는 신덕왕후 강씨다. 신의왕후는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개성에서 사망하였으므로 후에 왕비로 추존되었다. 신의왕후는 안변 사람 한경의 딸이다. 한경은 함경도의 요충지인 안변의 제족으로 고려말 밀직사부사 증영문하부사로 이성계 집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