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2

조선 왕릉(89) : 제4구역 융건릉(5)

융릉과 건릉의 전체면적은 84.2ha이며 수목현황은 침엽수 62%, 활엽수가 38%다. 건릉의 능역 입구에서 배수로와 참배로로 이어지는 진입공간에는 상수리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특히 건릉 진입부와 주변에는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갈참나무 등의 참나무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경관림을 갖고 있는 정조의 무덤은 융릉 서쪽으로 두 언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융릉을 자주 찾았던 정조는 영의정 채제공에게 “내가 죽거든 현릉원(융릉) 근처에 묻어주오”라고 했던 부탁대로 묻혔다. 그런데 1821년 효의왕후가 사망하자 정조 릉의 천장이 제기되었다. 정조의 릉이 아버지 무덤의 동쪽에 모셔졌으나 자리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효의왕후는 좌참찬 김시묵(金時默)의 딸로 영조 38년(1762) 세손빈(世..

조선 왕릉(88) : 제4구역 융건릉(4)

② 건릉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1752〜1800)와 효의왕후(1753〜1821) 김씨의 합장릉이다. 정조는 융릉에 있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둘째 아들로 8세 때인 영조 35년(1759) 왕세손에 책봉되었는데 정조는 출생과 관련해 남다른 이적이 많은 왕으로 기록된다. 아버지 사도세자는 정조가 태어나기 얼마 전 신룡(神龍)이 여의주를 물고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태어나기 하루 전에는 큰비가 내리고 뇌성이 일면서 구름이 잔뜩 끼더니 몇 십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 모습을 도성 사람들이 보고 이상하게 여겼다는 기록도 있다. 실제 정조는 사도세자가 꿈 내용을 그린 그림을 동궁(창덕궁) 벽에 걸어놓은 뒤 태어났다.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비극의 죽음을 당했지만 정조는 초창기 불안했던 입지가 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