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영 2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2)

youtu.be/vjBMAD4_CfM 정조가 이렇게 활발하게 내외적인 업적을 쌓아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조에게는 한 가지 개인적인 걸림돌이 있었다. 그것은 불명예스럽게 뒤주 속에서 사망한 사도 세자의 아들이라는 멍에였다. 그래서 정조는 통치 기간 내내 아버지 사도 세자에 대한 효성과 추모 사업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인 명분으로 내세웠다. 1762년 영조(英祖) 38년 윤 5월 21일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한여름 뒤주 속에 갇힌 지 8일 만에 죽었다. 사도세자는 영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왕세자로 책봉되어 한때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국정을 돌보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 쟁취를 위해 대립하고 있던 노론과 소론 간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부친의 미움을 사 28세란 젊은 나이에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수원화성(1)

youtu.be/z0ve2tQ32tQ 정조 22년(1798) 8월, 정조는 수원화성과 관련된 상소문을 받았다. 상소의 주인공은 임장원(任長源)이란 60세를 넘긴 언관으로 그는 정조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적었다. 임장원은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에게 효도를 다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 때문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 나라를 동요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임장원은 정조의 능묘 조성과 신도시 개발을 분명하게 비판했다. 그는 사도세자가 생전에 수원에 묻히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다고 지적하면서 수원에 능묘를 만들고 신도시를 개발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의 유언비어 중에는 정조가 ‘중국의 진시황제처럼 성을 쌓는다’라는 말도 있었다. 정조는 ‘소인(小人)과는 이루어진 성과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