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많은 이점도 있었지만 전적으로 문정왕후의 권력에 의지했다는 점이다. 유학자들은 문정왕후가 죽기만 기다렸는데 결국 문정왕후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결과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문정왕후의 장례를 마치자마자 유생들이 보우의 처벌과 불교탄압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렸는데 문제는 명종으로 볼 때 막을 힘도 의지도 없었다는 점이다. 상소가 잇다르자 명종은 보우의 승직을 박탈하고 서울 근교의 사찰 출입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유생들은 이런 조처에 만족하지 않고 보우의 처형을 주장했다. 문제는 보우가 불법을 저지렀거나 탐학을 자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그의 죄목은 다만 ‘요망하다’는 것이다. 이덕일 박사는 보우도 문정왕후가 사망하면 자신에게 죽음이 온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