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비극에서 가장 잘 알려진 ‘뒤주’가 『영조실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영조실록』 38년(1762) 윤 5월 13일의 기록에는 ‘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안에다 엄히 가두다(自內嚴囚)’라는 말이 나온다. ‘안에다 가둔다’는 기록을 국사편찬위원회의 김범 편사연구사는 뒤주와 같은 협소한 공간에서 9일 동안 살아있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함규진의 논거를 들어 뒤주 사망설을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뒤주라는 표현이 혜경궁홍씨의 『한중록』에 나오며 『정조실록』에는 ‘한 물건(一物)’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뒤주가 사망에 중요한 도구가 된 것은 사실로 생각된다고 첨언했다. 실제로 복원된 화성행궁에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뒤주 체험이 있을 정도로 뒤주는 한국민의 뇌리에 큰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