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은 태종이 죽고 세종이 즉위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지정된 주거지에서 탈출해 사냥하기, 국상 때 술 마시고 놀기, 남의 첩과 간통하기 등 과거의 행보를 지속했다. 여하튼 충녕이 왕위에 오른 후 양녕에 대한 문제는 계속 불거졌다. 심지어 양녕이 군사를 동원하여 한양을 점령하려한다는 유언비어조차 나돌았는데 그것은 양녕이 충녕에게 불만이 있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세종 치세에 양녕은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실제로 세종은 양녕을 극형에 처하기를 원하는 신하들의 상소에 시달리느라 병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끝까지 양녕을 두둔하며 처벌하지 않았다. 태종이 사망했을 때 양녕은 경기도 이천에 귀양살이하고 있었는데 슬퍼하지도 않고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소주를 마셨다. 이천군수가 이날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