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원왕후 2

조선 왕릉(69) : 제3구역 헌인릉(11)

홍경래 난은 조선 초유의 반란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후에도 계속 사회혼란이 일어나 1813년 제주도와 1815년 용인에서 민란이 일어났고 계속하여 민란과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급기야 1821년에는 서부지방에서 전염병이 크게 번져 무려 10여 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내에서 우환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순조는 백성을 살피려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고 알려진다. 어린 나이에 즉위해 정권의 험한 물살에 휩쓸린 순조이지만 순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왕이라는 설명이다. 순조26년(1826) 봄 굶주리는 백성들을 보고 순조는 한탄한다. ‘집집마다 들어가 보면 텅 비어 있고 마을마다 나가 보면 밥 짓는 연기가 끊겼다.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충분히 먹고 배를 두드리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흉..

조선 왕릉(67) : 제3구역 헌인릉(9)

② 인릉(仁陵) 인릉은 순조(1790〜1834)와 순원왕후(純元王后)(1789〜1857) 김씨의 합장묘로 태종의 묘와 조성시기가 400여년이나 차이가 난다.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박준원의 딸 수빈이다. 인조는 1800년 정월 왕세자에 책동되었는데 6월에 정조가 승하하자 졸지에 11살의 어린 나이에 창덕궁 인정전에서 즉위했다. 순조는 조선왕으로서는 유달리 행복한 상황에서 태어났다. 『정조실록』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신시(申時)에 창경궁 집복헌(集福軒)에서 원자(元子)가 태어났으니, 수빈박씨(綏嬪朴氏)가 낳았다. 이날 새벽에 금림(禁林)에는 붉은 광채가 있어 땅에 내리비쳤고 해가 한낮이 되자 무지개가 태묘(太廟)의 우물 속에서 일어나 오색광채를 이루었다.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구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