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 최씨 2

조선 왕릉(25) : 제2구역 서오릉(4)

조선조에서 내용은 어떻든 중전 폐출에 대한 민심이 나빠질수 밖에 없는데 숙종은 이를 숙종답게 처리했다. 인현왕후가 쫒겨난 지 5년 만인 1694년 숙종은 대대적인 정계개편에 돌입한 것이다. 숙종은 조선의 권력이 또 하나의 붕당에 의해 잠식되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특유의 국면 전환카드를 준비한 것이다. 우선 자신이 본의 아니게 인현왕후를 쫓아내었다며 철저하게 오리발내밀었다. 한마디로 인현왕후를 몰아내는데 일조한 신하들을 퇴출시키고 그녀를 지키려다 화를 당한 자들을 조정에 불러들였다. 이른바 ‘갑술환국(甲戌換局)’이다. 갑술환국은 기사환국처럼 왕비 교체를 위한 사전 정치환카드를 준비한 것이다. 우선 자신이 본의 아니게 인현왕후를 쫓아내었다며 철저하게 오리발내밀었다. 한마디로 인현왕후를 몰아내는데 일조한 신하..

조선 왕릉(24) : 제2구역 서오릉(3)

숙종의 반격은 생각보다 빨랐다. 장옥정이 아들을 낳은 다음해인 1689년 1월, 숙종은 신하들 앞에서 왕자의 명호를 정하겠다고 밝힌다. 새로 태어난 왕자를 ‘원자(元子)’로 삼겠다는 것으로 장옥정의 아들이 태어난 지 단 4개월 후다. 원자는 상속권, 즉 왕위계승권을 가진 임금의 맏아들을 뜻한다. 조선시대 왕의 장자는 통상 2〜3살에 원자가 되고, 7〜8살에 세자로 봉해져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그런데 태어난 지 두어 달밖에 안 된 갓난아기에다 그것도 궁녀 출신 후궁의 소생을 원자로 삼겠다니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서인들이 벌떼와 같이 일어났다. 서인이 가장 크게 반발한 것은 당시 인현왕후가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이므로 앞으로 임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된 다음에 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