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3

조선 왕릉(77) : 제4구역 영녕릉(3)

② 영릉(寧陵) 세종대왕릉에서 약 500미터 지점에 제17대 효종(1619〜1659)과 인선왕후(1618〜1674) 정씨의 쌍릉인 영릉(寧陵)이 있다. 그러므로 두 능을 합하여 영녕릉(英寧陵)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세종대왕릉만 알려져 있는데 덤으로 또 한 릉을 볼 수 있는 셈이다. 효종은 1619년 인조의 둘째아들로 봉림대군에 봉해졌고 12살에 한 살 위인 신풍부원군 장유의 딸인 인선왕후 덕수 장씨와 가례를 올려 1남 6녀를 두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도로 피신했으나 1637년 인조가 청 태종에게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볼모로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瀋陽)으로 잡혀간다. 이후 그는 청나라에 이끌려 서쪽으로는 몽골, 남쪽으로는 산해관과 금주위(錦州衛), 동쪽으로는 철령위(鐵嶺衛), 동북쪽으로..

조선 왕릉(51) : 제2구역 파주장릉(2)

소현세자는 조선 왕실의 지도층으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청나라에 그만큼 모욕을 받았으면서도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들 것을 철저하게 배워서 조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청나라에 굴하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들 것을 배우지 않으면 결코 청나라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다. 배청이 아니라 친청으로 보이는 소현세자의 행동에 청나라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 있는 인조와 조정 대신들(주전파)은 발끈했다. 그런데 1645년 2월에 귀국한 소현세자는 4월 갑자기 사망한다.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상당한 파장을 몰아왔다. 가장 큰 의혹은 소현세자가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세자가 죽고 난 뒤, 곳곳에 검은 반점이 나고, 시신이 빨리 부패했다는 점에 인조가 의관 이형익을..

조선 왕릉(50) : 제2구역 파주장릉(1)

파주 장릉(長陵, 사적 203호)은 조선 16대 인조(1595∼1649)와 인열왕후(1594∼1635) 한씨의 무덤으로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능원 양식으로 평가받는다. 장릉을 답사하려할 때 염두에 둘 것은 조선시대 왕릉 중 ‘장릉’이라고 불리는 능이 3기나 되어 사전에 확인하고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제6대 단종의 장릉(莊陵),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인조의 친부인 원종의 장릉(章陵), 그리고 파주에 있는 인조의 장릉(長陵)이다. 조선 왕조에서 평탄하게 왕위에 앉아있던 왕이 별로 없지만 인조는 조선 왕 중에서 특별히 파란만장한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조는 선조의 아들인 정원군(추존왕 원종(元宗))의 아들로 황해도 해주부(海州府) 관사에서 태어났다. 그가 해주에서 태어나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