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 3

조선 왕릉(82) : 제4구역 장릉(1)

영월의 장릉(莊陵, 사적 196호)은 비운의 왕으로 알려진 제6대 단종(1441〜1457)의 능이다. 조선 왕릉은 현재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하고 대부분 도성인 한양을 중심으로 반경 4〜40km에 조영됐다. 그러나 조선 제6대 단종의 장릉(莊陵)은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133-1번지에 있다. 이곳은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오지로 면적은 107여 만 평이나 된다. 단종이 이처럼 먼 곳에 묻힌 이유는 ‘단종애사(端宗哀史)’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곳에서는 생략한다. 단종은 1441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아들로 태어난 다음날 어머니를 여의었다. 10세 때인 1450년 문종의 즉위로 왕세자로 책봉되었는데 아버지 문종이 왕이 된지 2년 3개월 만에 사망하는 바람에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조선 왕릉(65) : 제3구역 헌인릉(7)

양녕은 태종이 죽고 세종이 즉위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지정된 주거지에서 탈출해 사냥하기, 국상 때 술 마시고 놀기, 남의 첩과 간통하기 등 과거의 행보를 지속했다. 여하튼 충녕이 왕위에 오른 후 양녕에 대한 문제는 계속 불거졌다. 심지어 양녕이 군사를 동원하여 한양을 점령하려한다는 유언비어조차 나돌았는데 그것은 양녕이 충녕에게 불만이 있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세종 치세에 양녕은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실제로 세종은 양녕을 극형에 처하기를 원하는 신하들의 상소에 시달리느라 병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끝까지 양녕을 두둔하며 처벌하지 않았다. 태종이 사망했을 때 양녕은 경기도 이천에 귀양살이하고 있었는데 슬퍼하지도 않고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소주를 마셨다. 이천군수가 이날 소..

조선 왕릉(48) : 제2구역 파주삼릉(4)

② 순릉(順陵) 순릉은 제9대 성종의 원비인 공혜왕후(1456〜1474) 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넷째 딸로 순릉과 마주보고 있는 공릉의 예종비인 장순왕후와 자매지간이다. 공혜왕후는 12살 때인 1467년 의경세자(덕종)의 둘째아들 자산군에게 출가했는데 예종이 세조의 장례를 치르면서 건강을 잃어 재위 14개월 만에 사망했다. 이때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겨우 3세였고 15세인 월산군은 병약했는데 정희왕후는 덕종의 장남인 월산대군을 왕으로 세우려했다. 그러나 한명희는 정희왕후의 의견에 반대하고 자신의 사위인 자산군을 왕으로 내세우자고 했다. 한명희의 주장에 밀린 정희왕후는 자산군을 왕으로 내세우되 대신 한명희가 왕실을 보호해달라고 요청했다. 여하튼 자산군(성종)이 왕위를 계승함에 따라 왕비로 책..